토론의 원칙 및 평가 기준
본 절에서는 실전토론을 분석하면서 토론수행에 대한 평가를 직접해보겠습니다. 앞에서는 그간 학교교육에서 행해온 debate가 주로 경쟁을 통한 승리를 목적으로 진행된 측면이 있기 때문에 자칫 청소년들의 인성교육에도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따라서 소통을 통한 이해를 목적으로 하는 토론으로 교육활동을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카데미식 토론은 사회의 일반 토론과는 다른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먼저 형식이 분명하고 동일한 시간 배분과 순서의 원칙을 따릅니다. 물론 최근 미디어 토론도 시간, 순서 등을 동일하게 하여 최대한 공정하게 토론을 진행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아카데미식 토론은 누군가가 토론결과를 평가한다는 점도 일반토론과 다릅니다. 교육에서 피교육자 개인의 능력평가는 교수자가 일정한 평가기준에 따라 개인의 수행을 측정하여 등급이나 수치로 나타내는 것으로 이루어집니다. 예로서 ‘논증과 토론’과 같은 교과목을 수강하고 최종적으로 수강생들의 수행 실적을 등급에 따라 수치로 환산한 이후에 학점 형태로 제시한다는 것입니다. 토론도 마찬가지입니다. 토론의 전 과정을 평가자가 관찰한 다음 심사기준에 따라 점수로 제시하는 것을 말합니다. 물론 특정한 기준 없이 수행을 평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토론과 같이 분명한 기준이 있는 수업이라면 미리 학생들에게 그 기준을 제시하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정리하면 토론과 같은 실기수행평가는 평가자가 토론자의 수행실기를 관찰한 후 사전에 제시된 심사기준에 따라 평가하여 등급이나 점수로 나타내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타당한 심사기준의 선정과 심사자의 올바른 심사능력이 토론평가의 핵심적 요소가 됩니다.
필자는 전부터 여러 차례 대학생 토론과 고등학생의 오프라인 토론대회를 진행한 경험이 있습니다. 또 현재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에서 온라인 토론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토론을 진행하면서 한 가지 문제점에 직면했는데 바로 평가에 관한 부분이었습니다.
토론이 교육적 활동의 일환으로 실시된다면 올바른 평가야말로 피교육자에 대한 최대의 보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피교육자가 수행결과를 알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면서 더 발전해나가는 점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간의 국내 토론에서 제대로 된 평가가 이루어져 왔다고 말하기는 힘듭니다. 토론대회를 운영하다보면 ‘Judge is always right’라는 말이 있습니다. 심사위원은 항상 옳다는 말입니다. 저 역시 이 말에 부분적으로 동의합니다. 긍정적 측면을 보자면 토론대회에서 심사자의 판정결과에 승복하지 않을 경우 행사 진행이 어려우므로 이러한 부분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표준화 된 기준이 분명히 갖추어져 있을 때라야만 이 말을 인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간 토론대회에서도 기준이 있었지만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예로서 또 다른 교과서(강태완 외, 2001)에도 나와 있듯이 논증력과 분석력, 내용, 반박, 구성, 팀워크 등과 같은 토론의 각 부분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이런 요소들을 중심으로 토론 수행 과정을 관찰한 후 10점, 5점, 3점 등 일정한 점수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기준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Debate 방식에서는 승패가 중요하므로 구체적인 기준보다는 누구 더 잘했는지를 판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다보니 승패를 가릴 수는 있지만 왜 그런 점수를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물론 경험 있는 심사자들은 나름대로 구체적인 이유를 설명해 주기도 하지만 우리 교육환경에서 경험 있는 다수의 심사자를 확보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다보니 관심 있는 교사나 강사들이 간단한 심사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하고 심사위원으로 투입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따라서 깊이 있는 심사평가를 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토론이 교육적 활동이라면 어떤 형태로든 표준화된 점수가 존재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다면 잘한 수행과 부족한 수행을 구분할 수 없습니다. 또한 선생님마다 평가기준이 달라 차이가 있다면 평가의 신뢰도가 떨어지게 됩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이제까지 토론이 교육적 효과가 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필자가 제시하는 토론기준은 정해진 기준에 따른 수행을 전혀 하지 못하면 0점, 아주 잘한 경우 2점이 주어집니다. 1점은 하긴 했으되 부족한 경우입니다. 이런 기준을 세우면 나름대로 평가의 일치도가 생깁니다.
기존 방식의 문제는 또 있습니다. 입론 10점, 질의 10점, 반박 10점 등으로 구성된 평가표는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잘했는지 또는 못했는지 알기에는 너무 추상적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평가표를 받아 보아도 학생 입장에서는 특별히 부족한 점을 알기 힘듭니다. 물론 평가표는 토론이 모두 끝난 후에 받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4명이 하는 토론의 경우 1시간 정도 소요되는 데 그 긴 시간동안 집중력 있게 모든 것을 다 듣고 평가하는 것은 전문성을 요하는 일입니다. 따라서 피상적 평가를 하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전문성에 대한 문제로서 또 한 가지는 심사자들의 논증에 대한 이해 부족을 들 수 있습니다. 이들은 전반적으로 토론에 대한 이해나 경험이 부족합니다. 우리나라 교육의 전반적인 문제이긴 합니다만 특정 분야에 전문성이 있다하더라도 토론심사에 대해서는 전문적인 교육을 받거나 또는 훈련을 해야만 정확한 평가를 할 수 있습니다. 실제 오프라인 토론은 일회적이기 때문에 철저하게 훈련된 심사자가 아니면 내용을 놓치지 않고 제대로 평가하기가 대단히 어려운 부분입니다. 물론 후마니타스 칼리지의 온라인 토론처럼 동영상으로 저장될 수 있는 경우는 복토(復討)를 통한 심사가 가능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토론평가를 할 것이냐는 것입니다. 우선 적절한 평가기준을 세우고 이에 맞춰 토론수행을 평가하는 것입니다. 토론평가는 토론수행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즉, 토론평가를 위해서는 토론이 갖추어야 할 형식과 토론에서 전개해야 할 내용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토론에 대한 평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어떻게 해야 토론을 잘 할 수 있는지를 알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물론 토론 평가기준을 잘 알고 있어도 기준에 맞게 철저한 준비를 하지 않으면 좋은 토론을 할 수 없습니다. 더 나은 토론을 위해 토론코치로부터 지도, 혹은 코칭을 받을 수도 있는데 토론 코칭이란 앞서의 토론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토론자의 토론내용과 형식 및 전달 방식에 대해 교육적 조언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아직 우리 대학 환경에서는 전문 토론코치를 두고 그로부터 조언을 구하기는 여건 상 힘들지만 담당교수나 토론을 잘하는 선배로부터 조언을 얻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래에서는 구체적인 토론평가 내용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토론평가에서 절대적 요소는 없습니다. 다만 교육토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전문가 집단이 개발하여 제시한 과학성이 확보된 평가기준이 필요합니다. 즉 전문가 집단이 모여 어떤 부분이 가장 중요한가를 합의하여 나름대로 중요한 평가기준을 도출해 내야 합니다. 김연아 선수의 피겨 스케이팅을 예로 들어 봅시다. 스피드나 점프의 높이, 회전 수, 이와 같은 분명한 측정이 가능한 경우는 심사가 어렵지 않지만 예술적 속성의 경우는 절대적 기준이 없습니다. 따라서 앞서 이야기한대로 전문가들이 모여 합의를 하게 되는 것이지요. 토론 역시 debate art라고 본다면 스케이팅 심사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제 입론 부분의 평가요소를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논제의 배경을 설명하였는가, 논제에 등장하는 주요용어를 적절히 정의하였는가, 논제를 지지해 주는 핵심 주장을 제시하였는가’입니다. 주요용어는 핵심적인 것만 정의하면 되고 핵심주장은 세 가지 정도가 적절하다고 앞 절에서 말씀드렸습니다.
다음으로 ‘말하기 원칙에 입각한 입론의 형식을 잘 갖추었는가’의 기준입니다. 이 기준 역시 개관제시와 순서를 정해 주장을 전개하는 것과 전체 요약 과정이 필요하다고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또한 ‘제대로 된 근거를 제시하였는가’입니다.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면 단언에 불과합니다. 토론은 바로 단언을 주장으로 바꾸는 게임입니다.
다음으로 부정 측 입론입니다. 흔히 긍정 측 입론과 똑 같은 심사기준으로 생각하지만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즉 부정 측 입론은 긍정 측 토론자의 주장에 대해 최소한 한 개의 반박적 주장을 포함하여 입론을 펼쳤는지가 중요한 심사기준이 됩니다. 나머지 원칙들은 긍정 측과 동일합니다. 이를 위해 실전에서 긍정 측 주장을 잘 듣고 최소한 한 가지의 주장을 반박적 주장으로 전환시켜야 합니다.
질의 및 답변은 소통을 극대화하기 위해 상대의 주장을 요약 제시한 후 질문하였는지를 평가합니다. 또 상대측의 주장을 주의 깊게 듣고 근거가 부족한 주장, 논리적 오류 혹은 불분명하거나 부정확한 부분을 지적하여 효과적인 질문을 하였는지를 평가합니다. 다음으로 상대의 질문에 대한 효과적인 답변 여부입니다. 상대방의 질문에 정직하게 답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설령 모순이 되는 답변을 하게 될 수밖에 없어도 묵묵부답이거나 거짓 답변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점이 바로 debate와 다른 점입니다. 승패를 따지지 않기에 그렇게 할 이유가 없습니다.
마지막은 반박 부분입니다. 입론에서 제시된 주장들 중 근거, 혹은 증거가 없거나 부족한 점을 들어 상대의 주장을 효과적으로 반박하는 것, 그리고 질의를 통해 드러난 문제점을 이용하여 반박을 효과적으로 하였는가를 평가합니다. 또 말하기의 원칙에 입각한 반박의 형식을 잘 갖추었는지도 평가합니다.
끝으로 표현능력과 관련된 부분입니다. 즉, 토론예절, 음성적 요소, 시각적 요소 및 시간입니다. 즉, 올바른 언어 사용, 상대방에 대한 배려, 명확한 발음과 높낮이, 토론 내용의 충분한 이해를 말합니다. 특히 내용 이해는 모르는 것을 아는 척 하는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기계적으로 준비해 온 내용을 읽기 보다는 내면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음으로 시간입니다. 대략 30초 정도 초과는 대부분 용납이 됩니다. 반대로 주어진 시간을 활용치 못하고 마무리 짓는 것도 감점 요인이 됩니다. 이렇게 위의 내용을 고려해서 토론하는 것이 아카데미식 토론의 특징입니다.
저자: 허경호(경희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온소통 대표) | 허경호 (2012). <소통과 스피치>, 서울: 온소통. 중 발췌
* 본 내용은 <소통과 스피치>에서 발췌한 것으로 위 내용(전체 혹은 부분을)을 적절한 인용 없이 사용하는 것과 무단 복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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