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적 주장과 정책적 주장
앞 절에 이어 본 절에서는 가치적 토론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사실적 토론은 철저한 과학적 검증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다소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따라서 아카데미 토론에서는 사실적 토론에 비해 유연성이 있는 가치토론, 정책토론을 주로 활용합니다.
가치논제는 진술문의 서술어가 가치 판단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 경우이며 바람직하다, 가치 있다, 윤리적이다, 중요하다, 낫다 등의 서술문으로 구성됩니다.
그러면 여러 가지 가치논제의 실례를 살펴보겠습니다. ‘국가보안법은 비민주적이다, 개고기를 먹는 것은 비윤리적이다, 안락사는 비인간적이다, 환경이 개발보다 더 중요하다, 낙태는 비윤리적이다, 한국 축구팀이 가장 훌륭한 축구팀이다, 개인의 사생활권이 다른 어떤 헌법적 권리보다 중요하다, 총기규제는 바람직한 일이다, 야구가 축구보다 더 낫다, 사형제도는 정당하다’와 같은 논제는 모두 가치토론의 논제이며, 사실논제와는 다른 기준으로 평가를 합니다. 예를 들어 ‘방송 파업은 정당하다, 대중교통 파업은 정당하다, 채식이 육식보다 낫다’ 등에 대한 평가를 한다는 말입니다.
가치논제 역시 먼저 논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채식이 육식보다 낫다는 주장을 펼칠 때 채식과 육식을 분명히 정의해야 됩니다. 채식에도 엄격한 채식주의자가 있고, 유제품까지는 먹는 사람도 있듯이 말입니다.
다음으로 논제를 평가하기 위해 어떤 가치가 사용되어야 하는가입니다. 채식과 육식의 경우 맛의 가치인지, 건강의 가치인지 등 여러 가지 기준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그런 다음 그 같은 가치가 달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인가를 살펴봐야하고, 그 같은 기준이 어떻게 적용되는가를 제시해주어야 합니다.
다음으로는 가치논제에 대한 필수쟁점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사실토론과 같이 명확한 정의와 구분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다음으로 주제에 대한 결론을 이끌어내는 데 어떤 가치나 일련의 가치가 가장 중요한지에 대한 주장이 제시되어야 합니다. 채식에 대한 긍정의 경우 ‘더 낫다’라는 판단에 적용될 수 있는 가치는 맛, 건강, 생명, 삶의 질, 선택의 자유 등이며 긍정 측은 건강을 선택해 주장할 수 있고, 부정 측은 삶의 질을 선택해 주장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특정가치가 달성되었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는지를 제시해주어야 합니다. 채식에 대해 긍정하는 측은 건강이라는 기준에 입각하여 질병으로부터 자유롭고 더 오래 살 때 달성된다고 주장하는 것이고, 부정 측은 삶의 질에 기준하여 행복과 만족이 충만될 때 달성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 같은 기준이 논제에 적용되었을 때 어떻게 그 가치가 달성되었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를 말합니다. 즉, ‘육식을 하는 사람이 채식하는 사람보다 심장병에 더 걸리고 더 일찍 죽는다. 따라서 채식이 더 낫다’는 주장입니다.
다음으로 정책적 논제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정책적 논제는 시사문제라는 이름으로 많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토론이라기보다는 특정 입장에 대한 이해로 많이 활용되고 있습니다.
정책적 논제는 ‘~해야 한다’ 등 미래에 어떤 조치를 취하는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기존의 사실적 토론에서 벗어난 형태입니다. 그렇지만 정책적 논제는 사실적 증거가 뒷받침되어야만 합니다.
가치토론에서 제시된 예에서 알 수 있듯이 국가보안법, 인터넷 셧다운제, 사형제 등에 대한 가치적 판단에 따라 당위성을 주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유념해야 할 점은 정책논제를 표현할 때 현상을 바꾸는 쪽으로 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현상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정책논제로 보기 힘듭니다. 또한 현상변화를 주장할 때는 구체적 개선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논제는 현상을 바꾸기 위한 시도를 표현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정책토론은 여섯 가지의 중요한 요소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설득 스피치에서도 유용하기 때문에 반드시 숙지하고 있어야 합니다(임태섭, 2003).
첫째, 무엇이 문제인가입니다. 국민소환제를 예로 들면 우선 정치인들이 당선 후 품위에 어긋나는 행위를 해 공직에 대한 신뢰를 떨어트리고 나아가 불신하게 만들며 유권자들에게 좌절감과 자괴감을 준다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둘째, 문제가 얼마나 크냐는 심각성입니다. 심각성은 질적 심각성과 양적 심각성으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질적 심각성은 공직 불신과 선거에 대한 무관심 및 정책 참여도의 감소를 들 수 있으며, 양적 심각성은 예로서 유권자의 70%가 정치인들의 품행에 어긋나는 행위가 심각하다고 인식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셋째, 무엇이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가라는 고유성은 해악을 초래하는 고질적인 원인을 말합니다. 여기에는 구조적 고유성 즉, 법규, 입법의 결여가 있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태도가 문제를 발생시키는 원인이 되는 태도적 고유성이 있습니다. 윤리위원회 위원들의 소극적 태도가 이에 속합니다. 하지만 부정 측에서는 공직자 출마 조건 강화를 국민소환제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할 수도 있습니다.
넷째, 문제를 고치기 위해 무엇이 행해져야 하는가 하는 방안입니다. 국가보안법과 같은 경우 비민주적이고, 헌법 정신을 훼손하므로 폐지로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폐지 후의 이익과 불이익을 용의주도하게 따져보아야만 실제 설득이 되는 것입니다. 국민소환제도 마찬가지로 시행자, 위임된 권한, 시행, 자금과 인력, 추가조항 등 구체적인 사항을 제시해야 됩니다.
다섯째, 그 같은 조치가 문제를 얼마나 잘 해결할 수 있는가라는 해결 능력입니다. 국민소환제의 경우 외국의 사례를 인용하여 상당한 효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여섯째, 그 같은 조치가 다른 이익이나 해악을 가져오는가입니다. 조치에 따른 추가적인 긍정적 효과나 부작용을 주장하는 것을 말합니다.
정책토론은 이처럼 다루어야 하는 부분이 상당히 많기 때문에 한 회당 시간이 많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이를 위해 입론 시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준비해 온 입론을 읽어야 한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물론 이 같은 필수쟁점 중 긍정 측이 몇 가지만을 선별해서 토론을 할 수도 있습니다. 앞서의 가치토론과 정책토론의 핵심을 숙지하고 있어야 더욱 설득력 있는 토론능력을 갖출 수 있습니다.
저자: 허경호(경희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온소통 대표) | 허경호 (2012). <소통과 스피치>, 서울: 온소통. 중 발췌
* 본 내용은 <소통과 스피치>에서 발췌한 것으로 위 내용(전체 혹은 부분을)을 적절한 인용 없이 사용하는 것과 무단 복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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