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스피치와 발표불안
앞 절에 이어 대중 스피치의 수사학적 상황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앞 절에서 다룬 아홉 가지 수사학적 분석요소는 개별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총체적인 한 묶음으로 보고 요소들 간의 상호작용적 요소를 잘 파악해서 준비해야 합니다.
대중스피치 조건으로 먼저 좋은 스피치와 뛰어난 연사를 들 수 있습니다. 앞서의 수사학적 상황적 요소를 활용하면 좋은 스피치란 내용적 요소(what message)를 말하며 뛰어난 연사는 ‘who’를 말합니다. 우선 이 두 가지 요소를 중점적으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좋은 스피치의 첫 번째 조건으로 스피치는 진실해야 합니다(임태섭, 2005). 진실한 연설을 위해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설득의 세 가지 요소인 ethos, logos, 및 pathos를 알아야 합니다. 이 요소는 꼭 설득에서뿐만 아니라 일반적 발표나 스피치 상황에서도 고려해야 할 요소입니다. 이 요소가 효율적으로 작동했을 때 훌륭한 스피치, 진실한 스피치가 될 수 있습니다.
Ethos는 인격적인 측면, 즉 연사의 사람 됨됨이를 말합니다. 전문성도 ethos 형성에 중요한 요소가 되며 윤리적(ethic) 측면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logos입니다. 논리적인 측면을 말합니다. 즉 말이 조리 있고 제시하는 주장에 근거가 있는 것을 말합니다. Pathos는 감성적 측면을 말하는 것으로 언어는 물론 비언어적 요소를 총체적으로 활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특히 언어 외적인 말투, 손짓, 몸짓, 눈빛과 같은 요소들이 감성적 측면에 미치는 영향을 말합니다.
다음으로 스피치는 명쾌(clarity)해야 합니다(임태섭, 2005). 구어체와 문어체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흔히 문어체로 쓴 글을 경어체로 읽는 것을 스피치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입말로 전달하는 것을 염두에 둔 스피치는 문어체와는 달리 처음부터 이 같은 특징을 고려해서 작성해야 합니다. 명쾌한 스피치를 위해서는 이해하기 쉽고 듣기 쉬워야 합니다. 이를 위해 먼저 정확한 언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특히 언어는 외연과 내연의 의미를 갖는 생물이기 때문에 정확한 단어를 선택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내용에 조리가 있어야 합니다. 조리란 이야기를 전개할 때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하기 위해 순서를 밟아 제시하는 것을 말합니다. 뿐만 아니라 적절한 반복도 필요합니다. 자신이 한 말을 의도적으로 반복(redundancy)해서 강조하는 것입니다. 저자 역시 강의 말미에 수업내용을 간략히 정리해서 내용을 반복하는데 앞선 내용을 보다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글의 경우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을 때 앞의 내용을 다시 읽어 볼 수 있지만 말은 일회성을 갖기에 발표하는 사람이 적절한 반복을 해서 의미를 다시 한 번 분명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음으로 좋은 스피치는 수사학적 기법을 적절히 활용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대통령의 취임사나 경축사를 들어보면 마치 무슨 헌장이나 보고서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대통령의 취임사도 스피치이기 때문에 눈으로 읽는 글이 아니라 귀로 듣는 말이어야 합니다. 따라서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우리말 사용은 물론 두운과 각운을 살리고 적절한 반복법을 사용해서 리듬이 있는 스피치로 전달해야 합니다. 이 외에도 대조법, 비유법, 영탄법 등 다양한 문법적 특성을 구사해서 장단이 맞는 멋진 스피치를 만들어야 합니다. 또한 자신만의 독특한 문체로 창의성, 독창성 있는 문장을 구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바로 이러한 부분들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세 가지의 설득요소 중 logos에 해당합니다.
다음으로 좋은 스피치의 조건은 간결성입니다(임태섭, 2005). 일상에서 사람들의 말을 살펴보면 어떤 사람은 정말 짧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도 한 페이지 분량만큼 장황하게 하는 사람이 있고 같은 내용이라도 한 문장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가 짧은 문장 안에 들어가 있다면 더 없이 좋을 것입니다. 따라서 말의 경제성을 고려해서 중언부언을 지양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좋은 스피치는 자연스러워야 합니다(임태섭, 2005). 스피치의 자연스러움은 메시지의 내용보다 이를 전달하는 연사를 통해 구현됩니다. 물론 내용도 자연스러워야 하지만 연사 스스로가 자연스러워야 합니다. 앞 절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자신의 진면목을 보여줘야 한다는 말입니다. 진면목이란 평소 자신의 모습을 말하는데 ‘인위적이면서도 급조된 나’는 사실 ‘없는 나’를 보여주게 되며 어색함을 피할 수 없습니다. 면접상황에서도 자연스러운 나, ‘참 나’를 보여주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렇다고 준비되지 않는 모습이 ‘자연스러운 나’라는 말이 아닙니다. 연기와 비교를 해보면 연기자가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을 철저히 내면화해서 전달했을 때 관객들로부터 훌륭한 연기자라는 찬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바로 이 같은 연기력은 급조된 것이 아니라 평소 철저한 연습과 노력을 통해 자연스럽게 획득된 결과물입니다. 스피치도 마찬가지입니다. 준비 없이 ‘자연스러운 나’를 드러내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연기자의 노력처럼 평소 꾸준한 연습으로 발음은 물론 표정이나 제스처가 체화되었을 때 비로소 ‘자연스러운 나’가 표현될 수 있습니다.
앞의 내용에 더해 부연설명을 하면 잠시 ‘elocutionist movement(웅변식 연설 운동)’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웅변식 연설 사조는 17~18세기를 풍미했던 화법으로서 말로 표현하는 것 외에 비언어적 요소, 즉 몸짓과 같은 제스처들을 어떤 의미로,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되어 있습니다. 가령 원망, 기대는 어떠한 제스처로 표현해야 한다는 식의 구성입니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 옛날 방식으로 여겨지면서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비언어적 제스처를 만들어서 하는 것은 대단히 부자연스럽고 인위적입니다. 현대사회는 특정하게 만든 것을 강요하기 보다는 개개인의 표현욕구, 또는 개성을 존중해주는 시대입니다. 따라서 이 같은 웅변식 연설 사조에 대한 대안으로 ‘no system is system’이란 말이 나오게 됩니다(McCroskey, 2006). No system은 정형화된 규범에 얽매이지 않고 개인의 자유로운 표현을 허용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연스러운 나(natural self)’를 구현하는 것이 바로 no system 운동의 목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소통과 스피치가 지향하는 교육목표 중의 하나도 이 같은 ‘자연스러운 나’를 구현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스피치는 적절해야 합니다(임태섭, 2005). 상황과 분위기에 맞아야 된다는 말입니다. 상황파악을 하지 못하고 연설하는 사람을 매우 어색하게 느꼈을 것입니다. 상황과 분위기를 잘 파악해야만 적절한 스피치를 행할 수 있습니다.
이제 훌륭한 연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훌륭한 연사의 조건으로 소통능력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수사학적 능력(rhetorical competence)으로 표현하지만 저자는 총체적 소통능력(total communication competence)이란 표현이 더 적절하다고 봅니다. 훌륭한 소통자로서 역량을 키워나갈 수 있는 기본을 갖추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을 명심해야 합니다.
1) 훌륭한 인격이 훌륭한 연사를 만듭니다(임태섭, 2005). 흔히 선거철만 되면 평소에 신뢰감을 주지 못하던 사람들이 사람들 앞에 나와 말로만 자신을 믿어달라고 표현하지만 인격적으로도 문제가 있고 사람들을 설득하기도 힘듭니다. 훌륭한 인격이 공신력을 낳습니다.
2) 지식을 갖춘 사람만이 훌륭한 연사가 될 수 있습니다(임태섭, 2005). 여기서 말하는 지식은 소통에 대한 철학인 소통관입니다. 소통은 인간 본성 중의 하나입니다. 인간 존재의 근원과 맞닿아 있습니다. 인간은 소통의 산물이기에 우리의 본성 안에 소통이 녹아있다는 것입니다. 단절되어 소통하지 못하면 결국 인간은 죽습니다. 흔히 인간 사회에서 소통은 뭔가를 행하고, 얻고, 이용하는 수단으로만 치부됩니다. 그러나 소통은 인간의 궁극적 목적이기도 합니다. 즉, 소통은 우리가 살아가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소통하는 상태를 유지한다는 측면에서 삶의 목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인 물과 공기도 그 소중함을 모른 채 남용되지만 물과 공기가 없으면 죽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소통도 그 소중함을 모른 채 남용하지만 소통하지 못하면 죽게 됩니다. 추상적인 생각을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은 인간을 다른 생물과 차별화 시킬 수 있는,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소중한 능력임에도 소통을 남용해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사회에 해를 끼칩니다. 결국 요즘 사회에서 극단적 사건들이 빗어지는 이유도 소통에서 발생되는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올바른 소통관을 갖고 소통과 관련된 기본적인 지식을 갖추었을 때 상황에 맞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훌륭한 연사가 될 수 있습니다.
3) 꾸준히 스피치 기법을 연습하는 사람이 훌륭한 연사가 될 수 있습니다. 철저한 준비와 연습을 한 후 실전을 경험해보고 복습을 통해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과정을 꾸준히 반복하면서 궁극적으로 발표에 대해, 대중연설에 대해 자신감을 갖게 됩니다. 앞서 제시한 이와 같은 요건들을 갖추는 것이 훌륭한 연사가 되는 지름길입니다.
훌륭한 연사 조건을 살펴보는 데 있어 발표불안증(communication apprehension)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흔히 무대 불안증을 일시적 상황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는데 맥크로스키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천성적인 측면이 강합니다. 정신의학에서 보면 유전적 요소도 있고 성격 안에 깊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없앤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발표불안증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발표불안증과 관련해 리차드 도위스(Dowis, 2000/2002)는 ‘무대공포증은 고소공포, 병과 죽음에 대한 공포, 그리고 벌레에 대한 공포와 더불어 미국인이 가장 두려워하는 열네 가지 공포 중 으뜸에 속하며 병과 죽음에 대한 공포는 6위에 머물렀다(22쪽)’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불안증 정도가 많은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인식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럼 발표불안증에 대한 올바른 대처법에 대해 알아보기 전에 먼저 발표불안증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1) 발표불안증은 지극히 자연적인 현상입니다(임태섭, 2005). 따라서 이를 없애려고 하기 보다는 관리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발표불안증은 두 가지 극단적 반응을 보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불안증이 전혀 없는 사람과 극심한 사람인데 불안증이 없는 사람들의 경우 대체로 발표준비가 철저하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반대로 너무 극심한 경우는 식은땀이 나고 목이 말라 좋은 발표를 할 수 없습니다. 결국 적절한 수준의 발표불안증은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2) 발표에 대한 지나친 걱정과 발표 결과에 대한 불확실성도 불안증을 야기하는 요소입니다(임태섭, 2005). 반드시 좋은 결과를 얻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이 이런 불안증을 더 부추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임태섭(2005) 교수가 제시한 발표불안증에 대한 관리 기법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겠습니다.
1) 주제 선택이 중요합니다. 내가 잘 알고 있고 편하게 전달할 수 있으면 불안감을 줄일 수 있습니다.
2) 철저하게 준비하고 큰 목소리로 연습해야 합니다. 소통과 스피치에서 스피치 비결이 뭐냐고 물어보면 훈련에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몇 번이고 큰 소리로 실전처럼 발표해보는 것처럼 짧은 시간 안에 좋은 결과를 얻어낼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3) 청중에 대한 분석도 잘해야 합니다. 흔히 청중이 같은 학교 동료들이기 때문에 청중의 생각이나 가치, 느낌에 대해 별도의 조사를 해보지 않고 가정에 입각해서 스피치를 하다가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을 얻게 되면 발표 도중 불안감이 증폭될 수 있습니다.
4) 시각 보조자료도 제대로 활용해야 합니다. 파워포인트로 보여주는 텍스트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발표는 결코 효과적인 발표라고 볼 수 없습니다. 발표자(presenter)가 주도권을 행사하는 발표를 해야 합니다. 또 갑자기 말문이 막혔을 때 당황하지 말고 침착하게 틀린 부분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 최선책입니다.
5) 불안증 극복 체조도 익혀두면 나름대로 활용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훌륭한 연설을 위해서 좋은 스피치가 갖추어야 될 요건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또한 훌륭한 소통관과 소통지식 및 기술을 갖추고 발표불안증을 극복할 수 있을 때 훌륭한 연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저자: 허경호(경희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온소통 대표) | 허경호 (2012). <소통과 스피치>, 서울: 온소통. 중 발췌
* 본 내용은 <소통과 스피치>에서 발췌한 것으로 위 내용(전체 혹은 부분을)을 적절한 인용 없이 사용하는 것과 무단 복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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