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 스피치와 윤리
이번 장에서는 구체적으로 스피치 준비 전략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스피치 준비 전략을 살펴보기 전에 중요하게 다뤄야 할 문제가 대중스피치와 윤리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우리 사회에서 말의 신뢰성, 구체적으로는 공직자가 한 말의 적절성 또는 정확성이 자주 사회문제가 됩니다. 또한 공직에 진출하는 사람들의 저작물들이 표절시비에 휘말려 공직을 그만두는 경우도 자주 있습니다. 특히 많은 사람들 앞에서 정보를 전달하거나 설득적인 이야기를 할 때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비윤리적인 행동을 하는 것, 예를 들어 잘못된 정보를 준다거나 의도적으로 자료를 왜곡시킨다거나 하는 등의 비윤리적인 행동을 해서 청중을 속이고 자신이 얻고자 하는 바를 얻는 등의 문제도 발생합니다.
Ethos라는 말은 인격적 소구라는 말인데 이 말은 ethics, 즉 윤리학에서 온 말입니다. 인격은 흔히 character라는 표현을 쓰지만 스피치에서 가장 중요한 공신력과 관련된 부분의 의미를 쫓아서 올라가보면 결국 ethos라는 말이 나오고 이것의 근원은 ethics입니다. 이런 것만 보아도 남들 앞에 서서 말할 때의 윤리란 연사의 인격과 관련이 있으며 이런 의미가 ethos라는 말 속에 녹아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략을 세워서 핵심 요소를 파악하고 거기에 맞게 구체적인 기술들을 배우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연설의 목적이 윤리에 부합하는가, 내가 연사로서의 윤리를 철저히 지키면서 대중연설가로서 사람들 앞에 서는가 등과 같은 부분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있어야 합니다.
2000년 전 퀸틸리아누스는 수사학적 소통 행위를 "The art of a good man speaking well" 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Good man은 인격과 연결됩니다. 인격은 신뢰와 공신력, 믿음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특히 대중연설에서 ethos, 즉 인격적 소구라는 말 자체에서 알 수 있듯이 인격은 윤리에 맞는 행동을 하는 것을 말하기에 윤리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는 사람을 보고 인격적인 사람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윤리학이라는 말로 확장을 해서 이야기를 하면 철학의 한 분야로 볼 수 있겠고 이 분야는 인간 행동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철학의 한 분야입니다. 도덕성뿐 아니라 공정성, 정당성, 또는 정직성 이런 것들을 따지는 학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고 관심을 가졌던 마이클 샌들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보면 정의라는 것도 결국 윤리와 맞닿아 있습니다. ‘옳은가, 정당한가, 도덕적인가’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 정의입니다. 정의에서도 역시 윤리가 일정한 역할을 합니다. 다만 윤리라는 것이 고정불변의 것으로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윤리가 시대적으로 변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윤리는 고정되어 불변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가변적인 측면이 분명히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행위는 시대를 막론하고 상당히 오래 전부터 비윤리적인 행위로 자리매김 했습니다. 그렇지만 국가 간의 이익이 충돌하게 되면서 전쟁이 벌어지는데 한 개인이 개인을 살상하는 것을 넘어 이처럼 국가(들) 간의 대량살상으로 확대되면 이것을 비윤리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하는 일입니다. 과연 윤리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해보게 만드는 부분입니다.
윤리의 기준을 정하는 것은 간단치 않습니다. 폭넓게 윤리학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윤리를 따지면 소통학 영역의 범위를 벗어나기 때문에 그것을 좁혀서 대중연사로서의 윤리에 한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비윤리적인 이야기를 할 때 히틀러라는 인물을 자주 언급합니다. 대중 연설가로서의 히틀러는 윤리적이었을까요, 비윤리적이었을까요? 히틀러는 유태인을 탄압했으며 더불어 공산주의에 대항하기 위해서 독일군의 단결을 호소하며 이를 이루기 위한 희생양으로 유태인들을 재물로 삼았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대단히 감성중심적인 전략들을 채택했고 그렇게 함으로써 일정부분 연사로서 성공을 거두었으나 그것이 과연 윤리적이었는가 하는 문제가 남습니다. 결론은 비윤리적이었습니다. 히틀러의 전쟁행위도 비윤리적 행위로 비난받아 마땅합니다만 미국이 개입했던 월남전도 마찬가지입니다. 월남전 이야기를 하다 보면 한없이 나옵니다. 베트남 전쟁 때 우리도 국군을 파견했기 때문에 당시 극장에 가면 베트남 소식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전쟁 중 베트콩의 사상자 숫자를 집계하여 합계를 냈더니 실제 총 월맹군 수보다도 더 초과하게 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결국은 거짓말을 했던 것입니다(McCroskey, 2006). 미국도 6만 명에 가까운 사상자를 냈지만 과연 이것이 옳은 행위였는가? 하고 반문을 하게 됩니다. 윤리라고 하는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윤리와는 다르기 때문에 때로는 판단하기가 어렵습니다.
흔히 윤리에 관련된 말로 우리에게 익숙하고 잘 활용하는 말이 “목적이 좋으면 수단이 나빠도 용납이 된다”입니다. 좋은 목적에 좋은 수단을 쓰면 문제가 없지만 좋은 목적을 위해서 나쁜 수단을 쓰는 것도 문제가 됩니다. 나쁜 목적을 위해 나쁜 수단을 쓰는 것도 분명하게 용납이 안 됩니다. 그러나 나쁜 목적을 위해 좋은 수단을 쓴다거나 하는 것은 판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윤리라는 것은 불분명합니다. 내가 하면 진실이고 윤리적 행위인데 반해 상대가 하게 되면 거짓이고 비윤리적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 시각에 따라서 거짓이다, 아니다가 결정 납니다. 맥크로스키(2006)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전달자의 의향, 의도입니다.
맥크로스키(2006) 교수는 윤리는 어떤 사람이 행하는 의식적 선택의 문제라고 했습니다. 의식적으로 선택을 했기 때문에 거기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의도하지 않았어도 결과가 나쁘다면 문제가 되지만 중요한 것은 윤리는 행하는 사람의 의식적인 선택입니다. 맥크로스키(2006) 교수는 인코더(encoder)의 의향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의향에 따라서 결국 좋고 나쁘고가 결정 된다고 봅니다. 문제는 연사의 의도를 알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청중의 입장에서 연사의 의향을 추정할 수는 있지만 밖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확인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맥크로스키(2006)는 수단과 목적 간의 두 요소로는 윤리냐, 비윤리냐를 판단하기 어렵다고 결론을 내리고 결국 연사의 의향이 윤리냐 아니냐를 결정한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물론 연사가 선의를 가지고 청중에게 이야기를 했느냐는 것도 유추이기 때문에 겉으로 관찰해내기는 어렵습니다. 그러한 의향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도 연사의 공신력의 일부로 인정합니다. 그만큼 대중 연설에서는 의향이 중요합니다.
지나치게 윤리 문제를 길게 다루면 초점이 흐려집니다. 여기서는 루카스(Lucas, 2008/2012)의 책에 나오는 이야기로 좁혀서 대중연설에서 연사로서의 윤리는 어떤 측면을 다루는가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첫째는 ‘자신의 목표가 윤리적인가?’입니다. 물론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여러분들의 스피치에서 목표가 비윤리적인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의도, 목표를 가지고 스피치를 하는가, 의도가 윤리적인가는 철저하게 따져보아야 합니다. 저자가 강의실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윤리는 ‘연설을 철저하게 준비했는가?’입니다.
두 번째로 여러분들이 흔히 간과할 수 있는 비윤리적인 측면은 자신의 주장을 강조하고 싶은 나머지 결과를 조작해서 이야기한다거나 맥락을 무시하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어떤 이야기든 맥락을 떠나게 되면 다양한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에 맥락을 존중하면서 이야기를 해야 오해가 없습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자신의 목적이 앞서서 맥락을 무시하고 특정 부분만을 발췌해서 쓰다 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굉장히 비윤리적인 행위가 됩니다.
세 번째로 출처가 부정확 한 것, 잠정적 결론을 최종적인 것처럼, 확실치 않은 이야기를 확실한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비윤리적입니다.
네 번째로 실제 언어의 구사에서 또한 인격 모독적인 언어를 사용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다섯 번째는 ‘전략의 구사에서 윤리적인가?’라는 측면입니다. 전략이라는 말이 갖는 윤리적 측면은 매우 민감한 부분입니다. 전략이라는 말은 거짓말을 할 수도 있다는 말을 듣기 좋은 말로 표현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을 꼭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즉, 긍정적이고 좋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전략을 수립을 하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안을 수립하는 것을 나쁘게만 볼 필요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모호함을 구사한다거나 일부러 인코딩할 때 상대가 뜻을 다의적으로 해석하게끔 만들려는 의도를 나쁘게 볼 수는 없습니다. 물론 전략구사 자체가 자칫 비윤리적인 측면이 강하게 드러날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해야 합니다.
여섯 번째는 대학에서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표절문제입니다. 표절에도 여러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남의 글을 퍼온다거나, 짜깁기를 한다든가, 혹은 부분적으로 표절하고 출처를 밝히지 않는 등의 경우가 있습니다. 저자는 정보제공 스피치, 또는 스피치 설득 등을 할 때 두 개 이상의 인용을 전문에 집어넣을 것을 요구하는데 이처럼 인용을 시키는 이유도 표절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남의 이야기나 생각을 빌려왔을 때는 반드시 빌려왔다는 표현을 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글을 쓸 때뿐만 아니라 말을 할 때도 밝혀야 합니다. 출처를 밝히지 않으면 마치 자신이 한 이야기처럼 되기 때문에 자칫하면 표절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문장단위로 출처를 다 밝혀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의 연보를 이야기 하는데 모든 출처를 다 밝히면 그것은 논문이지 스피치는 아닙니다.
연사로서의 윤리가 있듯이 청자로서의 윤리도 있습니다. 청자로서의 윤리의 첫 번째는 예의를 지키고 관심을 보이는 것입니다(McCroskey, 2006). 나도 항상 연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그 연사의 말을 잘 들어주고 관심을 갖고 예의를 갖추어야 합니다. 우리 대학생 청중들을 보면 그런 면에서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청자로서의 윤리를 지켜야한다는 것을 의식하고 지켜나가야 합니다. 두 번째는 연사를 미리 판단하지 않는 것입니다. 앞부분에 대한 판단으로 뒷부분에 나오는 이야기를 다 들어보지도 않는 것은 윤리에 어긋나는 행동입니다.
맥크로스키(2006)가 말하는 윤리적 의무와 어려움에 대해 살펴보기로 합시다. 첫 번째는 자신이 진실이고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말하라고 합니다. 물론 당연히 진실과 정의를 말해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어려움이 따릅니다. 우리 사회에서 보면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하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두 번째는 잘 말하라, 즉 speak well입니다. 철저하게 준비하고 들을 가치가 있는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준비 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고 때로는 지식이 갖추어지지 않아서 어떻게 말하는 것이 잘 말하는 것인지 모를 수도 있습니다. 잘 말한다는 것은 윤리이지만 윤리적인 실천을 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세 번째는 말하지 말라, 즉 not to speak인 경우입니다. 전달하려는 내용이 불분명할 때, 확실치 않은 이야기를 확실한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 보다는 말하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쉽지 않지만 침묵을 지켜야 할 때는 지켜야 합니다. 네 번째는 ‘경청하라’입니다.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야 합니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많이 들으면서 정보를 얻게 됩니다. <소통과 스피치> 또는 <스피치와 프레젠테이션>과 같은 수업을 듣다 보면 나의 스피치를 잘 준비해서 전달하는 보람도 있지만 동료들의 서로 다른 이야기를 듣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경청을 통해서 습득하는 것이 많기 때문에 윤리적이면서도 얻는 것이 많은 효과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을 정리해보겠습니다. 대중스피치에는 윤리라는 측면이 있습니다. 폭넓은 차원에서 다뤄야 할 부분도 있지만 구체적으로 따지면 연사와 청자로서의 윤리를 지켜야 합니다. 이번 장을 공부하면서 소통에서의 윤리적 측면을 인식하고 윤리적 소통행위를 실천합시다.
저자: 허경호(경희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온소통 대표) | 허경호 (2012). <소통과 스피치>, 서울: 온소통. 중 발췌
* 본 내용은 <소통과 스피치>에서 발췌한 것으로 위 내용(전체 혹은 부분을)을 적절한 인용 없이 사용하는 것과 무단 복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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