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의 구조를 학습하는 목적은 토론이 어떠한 요소로 구성되어 있는가를 살펴보자는 데 있습니다. 토론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논제가 있어야 합니다. 의회식 토론에서는 논제라는 말 대신 동의안(resolution)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논제 선정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생산적인 토론을 할 수 없습니다. 간혹 논제를 “… 옳은가?” 등과 같은 질문 형태로 작성하기도 하는데 논제 선정의 기본 원칙은 긍정 서술문으로 작성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선정된 논제에 대한 긍정 측의 입론과 부정 측의 반대신문이 진행됩니다. 관련 서적에서는 교차조사(cross-examination)라는 표현을 씁니다만 이는 법정토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영어식 표현을 그대로 번역한 것입니다. 사실 우리나라 법정의 경우 반대신문을 말합니다. 여기서 잠깐 짚고 넘어가자면 반대신문에서 신문은 심문과는 다릅니다. 신문의 訊은 말씀 언(言)이 들어간 ‘묻는다’는 표현이고 심문에서의 審은 ‘관찰한다’는 뜻입니다(여미란·허경호, 2012).
중요한 사실은 논제 선정이 잘못되면 의미 있는 토론을 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다양한 논란이 있는 사안 중 핵심 내용을 명료하게 제시하는 진술문이라야만 논제가 될 자격이 있습니다. 이렇게 논제 기준을 명확히 구분 짓는 이유는 토론의 실용적 측면을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논제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예로서 우선 열린 논제와 닫힌 논제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열린 논제란 토론자가 좀 더 폭넓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진술문을 말합니다. “환경이 발전보다 중요하다”와 같은 논제를 예로 들 수 있으며 다양한 속담도 논제로 쓰일 수 있습니다. 예컨대 과거 토론 논제로 선정된 바 있는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라는 속담도 열린 논제 중의 하나로서, 가부장적 제도 하에서 여성의 역할이 지나치게 활발하면 좋지 않다는 의미를 내포한 속담인데, 이를 현대 가정이나 사회와 연관 지어 해석하면 다양한 양측의 주장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반면 닫힌 논제는 토론자들의 해석의 여지가 좁은 논제를 말합니다. 그런데 간혹 긍정 측이 유리한 입장에 서기 위해 논제를 지나치게 좁게 해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경우 부정 측은 제대로 주장을 펼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생산적 토론이 이뤄지지 않습니다. 물론 긍정 측이 제시한 이 같은 논제 정의에 대해 부정 측은 이의를 제기할 수 있지만 실전에서는 흔치 않을 뿐더러 부정 측은 긍정 측의 논제 해석이 왜 원래의 취지에서 벗어났는지를 입증해야하기 때문에 결코 쉽지 않습니다. 긍정 측 입장에서도 토론이란 하나의 논제에 대해 균형 있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주장을 펼침으로서 합리적으로 차선책에 도달할 수 있는 도구라는 인식으로 임해야지, 승부에 집착해서 논제를 지나치게 좁게 해석해서 주장을 펼치는 일은 지양해야 합니다. 요약하면 토론 논제는 양측이 상대의 주장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도록 공정하고 균형 있게 선정되고 해석되어야 합니다.
다음으로 토론논제에 대해 본격적으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앞서 토론논제에는 정책적 논제, 가치적 논제 및 사실적 논제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먼저 사실적 논제를 다뤄보겠습니다. 앞으로 다룰 내용이 사실토론보다는 가치토론과 정책토론에 중점을 둘 것이므로 사실토론은 간략히 살펴보기로 합니다. 사실토론은 법정에서 사실 여부를 따질 목적으로 진행되는 토론을 말합니다. 물론 마지막 발언에서 가치를 강조하는 부분이 나올 수도 있지만 결국 사실 여부를 두고 공방이 이어지는 토론이기 때문에 사실토론입니다. 예전에 상영된 영화 <부러진 화살>을 보면 법정토론이 가치 지향적이기도 하고, 또 사법부의 개혁을 요구하는 함축적인 내용이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석궁테러에 관한 사실 여부에 초점을 둡니다. 따라서 이 같은 내용의 토론은 아카데미식 토론과는 다소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전적으로 배제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사실적 논제를 다루는 법정토론을 좀 더 자세히 살펴봅시다. 예컨대 소위 현장부재증명(alibi)이란 ‘사건 당시 피고는 현장에 있지 않았다’를 증명하게 되면 이 피의자는 무죄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즉 해당 사건 당시에 피고가 현장에 있었는지의 여부를 따지는 사실토론의 결과에 따라 피고의 유무죄가 성립됩니다.
또 “지구는 태양의 주위를 돈다”와 같은 과학적 주장도 사실적 주장입니다. 지금이야 과학적 사실로 증명이 되었지만 당시 갈릴레이는 이 주장을 펴 자칫 자신의 목숨을 잃을 뻔 했습니다. 실제 과학자들은 엄격한 방식으로 증거를 수집하여 자신의 주장이 사실임을 학술 공동체에서 증명합니다. 그리고 그 증명이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인정되면 공식적인 학술 이론으로 발표됩니다.
과학적 주장뿐만 아니라 역사적 주장도 사실토론에 속합니다. 예를 들어 고구려와 관련된 중국 측의 주장인 “고구려는 중국의 변방정부였다”는 주장은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결코 사실로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이며, “독도는 한국의 고유 영토이다”는 주장이 역사적 사실임을 분명히 했음에도 일본은 아직도 독도가 자신들의 영토라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또 현재 사회적으로 제기되는 사안에 대해서도 사실토론이 가능합니다. 가령 “한국에는 언론자유가 없다”와 같은 논제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또 “향후 주가가 상승할 것이라”는 미래형 주장도 사실토론에 속합니다.
이처럼 사실을 다루는 사실토론은 조금만 깊이 들어가면 대부분 전문적 영역이기 때문에 보통 비전문가로서 전문성 없이 폭넓은 주제에 대해 토론을 하는 아카데미식 토론의 논제로 채택하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습니다.
저자: 허경호(경희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온소통 대표) | 도서 <논증과 토론(출판: 온소통)> 중 발췌
* 본 내용은 논증과 토론 도서에서 발췌한 것으로 무단 복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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