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으로는 가치논제입니다. 가치 논제는 진술문 안에 가치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는 경우입니다. 바람직하다, 옳다, 효율적이다, 중요하다 등으로 서술되는 논제가 여기에 속합니다. 가치토론에서는 논제를 정할 때 중립적 어휘를 사용하도록 신경 써야 합니다.
예를 들어 “낙태는 비윤리적이다”는 논제를 살펴봅시다. 낙태라는 어휘는 정서적으로 부정적인 느낌이 강하므로 ‘인공 임신중절’이라는 표현이 좀 더 중립적입니다. 물론 모든 단어에는 내연의 뜻이 존재하므로 완전히 중립적인 용어란 존재하기 힘듭니다.
또 다른 예로 원자력(핵)과 관련된 논제를 정할 때를 살펴봅시다. 즉 ‘핵’ 혹은 ‘원자력’ 중 어떤 어휘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토론의 주체를 알 수 있을 만큼 토론에서 어휘 선택은 중요합니다. ‘원전 수거물’이라는 표현 대신 ‘핵 폐기물’이라는 표현을 쓰는 경우 핵에 반대하는 환경단체와 같은 입장일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마찬가지로 ‘원전 수거물’이란 표현을 쓰는 경우 대부분 원자력을 에너지원으로 인정하거나 실제 운영을 담당하는 정부 측일 확률이 높습니다. 또 다른 예로 “잔혹한 동물실험은 중단 되어야 한다”는 논제를 들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잔혹한’이란 표현이 정서적으로 영향을 미쳐 ‘중단 되어야 한다’에 반대하는, 즉 ‘지속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펴는 부정 측에 더 큰 부담을 줄 수 있습니다.
끝으로 정책 논제는 ‘~해야만 한다’와 같이 흔히 미래에 취해야 할 조치를 말합니다. 대부분 “사형제도는 폐지되어야 한다”와 같이 당위성을 가진 서술문으로 표현됩니다. 그런데 이 논제는 사실적 논제나 가치 논제와는 달리 논리 영역에서 벗어납니다. 인간의 의지가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결국 궁극적으로 미래에 어떤 일을 하거나 방지해서 사회를 더 낫게 만드는 것이 정책이고 이에 대한 토론이 곧 정책토론입니다. 물론 정책적 주장을 펼치기 전에 사실관계를 따져서 ‘그러므로 ~해야 한다’는 식의 사실적 주장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배를 끊어야 한다”라는 논제를 살펴보면 ‘담배는 이런 저런 이유로 건강에 해롭고, 타인에게 피해를 준다’와 같은 사실적 주장은 논리 영역에 속합니다. 이런 사실적 주장을 근거로 ‘고로 담배를 끊어야 한다’는 당위적 논제를 지지할 수 있습니다.
보통 정책토론은 정부의 정책과 관련하여 주로 진행되는데 정권을 담당하고 있는 여당은 대부분 무엇인가를 바꾸자고 주장하는 반면 야당은 바꿀 필요가 있겠는가, 혹은 더 나은 대안이 있다고 주장하는 입장입니다. 변화를 시도하는 여당의 정책에 대해 야당은 정책의 실효성 및 부작용 등에 대한 문제 제기를 통해 정책이 보다 충실하게 집행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정책토론은 사회발전을 위해 매우 중요한 토론입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사형제도는 폐지되어야 한다”, “버스전용차로는 폐지되어야 한다”, “셧다운제는 폐지되어야 한다”, “보편적 복지가 시행 되어야 한다” 등의 논제는 모두 정책적 논제입니다.
다음으로 정책 논제의 성립 요건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정책 논제는 현재에 초점을 두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요건이 존재해야만 논제로서 채택될 수 있습니다.
첫째, 주제가 논란이 되고 있어야 합니다. 찬반 의견이 상존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누구나 다 동의하면 토론할 이유가 없습니다. 둘째, 하나의 논점이 존재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원자력 에너지는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다”라는 논제의 경우 선별적인 긍정이 가능합니다. 따라서 ‘깨끗하다’라는 주장에는 동의하지만 ‘안전하다’라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을 수 있으므로 논제에 대한 부분 동의가 존재합니다.
토론은 논제 전체에 대한 긍·부정을 통해 전면적 충돌을 꾀하기 때문에 하나의 논점이어야 합니다. 따라서 두 가지의 논점이 존재하는 논제는 논제선정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 논제입니다.
셋째,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중립적 어휘로 표현 되어야 합니다. 모든 어휘에는 외연과 내연의 의미가 공존하기 때문에 사실 완벽히 중립적 어휘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도 가능한 한 중립적이며 객관적인 용어를 사용해서 기술해야 합니다.
넷째, 변화의 방향이 제시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식의 의문문은 부적절합니다. 폐지나 개선 등 방향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긍정문으로 진술 되어야 합니다. 부정문으로 진술되면 토론이 복잡하게 되어 혼란스럽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토론의 내용 전개 시 유념해야 할 요소들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논제가 정해지면 논제에 대한 배경을 간략히 설명한 뒤에는 논제에 담겨있는 핵심 개념을 정의해 주어야 합니다. 논제에 대한 정의가 부정확하면 생산적인 토론이 되기 어렵습니다.
이를 위해 긍정 측은 논제의 범위 및 논제에 담겨 있는 개념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정의를 해서 토론의 맥락을 분명히 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개념 정의를 위해서는 사례 제시, 일상적 용어 사용, 권위의 인용, 조작적 정의, 부정에 의한 정의, 비교와 대조, 어원의 제시, 및 이 같은 다양한 방법의 조합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다음으로 증명과 반증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일반적으로 토론에서 긍정 측은 현상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현상은 관성이 있어 그대로 변화 없이 현재를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부정 측은 관성의 힘이 유지되는 이익을 상대적으로 얻고 있는데 반해 긍정 측은 이를 변화시켜야 하는 즉, 증명의 부담을 안고 있습니다. 부정 측 역시 반증의 부담을 안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쟁점과 관련하여 필수쟁점, 잠재적 쟁점 등이 있으며 가치토론이냐, 정책토론이냐에 따라 쟁점의 초점에 상이한 특징이 있다는 점도 기억해야 합니다.
앞서 잠깐 언급했던 반대신문과 대체 방안을 살펴보겠습니다. 반대신문은 상대의 주장에서 논리상의 문제를 부각시키는 일종의 논리적 감리 과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강태완 외, 2001).
앞서 언급했듯이 교차조사라는 표현은 반대신문이란 말을 잘못 번역한 말인데 현재 필자가 진행하는 1대1 화상토론에서는 질의라는 표현으로 변경하였으며(여미란·허경호, 2012), 양측이 각각 입론을 한 후 상대측이 질의하는 식으로 순서를 배정하였습니다.
다음으로 대체방안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대체방안은 정책토론에서 주로 쓰이는 용어로, 긍정 측이 제시한 방안이 현 상태의 문제를 풀기에 적합지 않을 때 부정 측이 제시하는 소위 더 좋은 방안인 카운터플랜(counterplan)을 말합니다. 정책토론에서는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요소입니다.
그렇지만 이 대체 방안은 긍정 측이 제안한 방안과 결코 동시에 같이 실행할 수 있어서는 안 됩니다. 즉 부정 측이 제안 하는 대체 방안만으로 정책의 효과를 거둘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토론의 구조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다음 장에서는 토론의 형식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저자: 허경호(경희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온소통 대표) | 도서 <논증과 토론(출판: 온소통)> 중 발췌
* 본 내용은 논증과 토론 도서에서 발췌한 것으로 무단 복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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