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의 역사와 토론의 구조에 대해 살펴보기에 앞서 과목의 이름과 관련하여 몇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논증과 토론’으로부터 논증, 비판적 사고, 형식논리학 등 여러 단어들이 연상되는데 이에 대한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우선 논증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논증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주장을 알아야 합니다. 주장은 참이거나 거짓인 진술을 말합니다. 혹자는 모든 것이 주장이라고 하지만 이는 옳지 않습니다. 주장은 진리의 값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돈다”는 주장의 진리 값을 따져볼 수 있습니다. 가치논제인 “인간복제는 비윤리적이다”의 경우 윤리에 대한 값을 따져볼 수 있으므로 주장으로 볼 수 있습니다.
논증은 주장들의 집합체입니다. 하나의 주장이 제시되면 그 주장을 지지해주는 여러 주장들이 얽히게 되는데 이런 일련의 집합을 말합니다. 삼단논법의 논증으로 예를 들면 ‘모든 인간은 죽는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이다, 그러므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는 식으로 논리를 펼칩니다.
이것은 형식논리학의 영역에 속합니다. 형식논리학은 주장과 주장 간의 관계 등을 정교하게 밝히는 철학이지만 사실 상당히 어려운 학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여기서 배우는 토론에 형식논리학이 실제 큰 도움은 되지 않습니다. 그 대안으로 실용논리학을 들 수 있습니다. 실용논리학은 전통적인 논리학에서 벗어나 구어체가 중심이 되고 형식을 벗어난 논리학을 말합니다.
형식논리학을 잘 살펴보면 논증 내의 주장들의 관계만을 살펴보기 때문에 실용적인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앞서 예를 든 ‘모든 인간은 죽는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이다, 그러므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를 살펴보면 ‘모든 인간은 죽는다’는 명제는 참이지만 형식논리학에서는 진술문 자체가 참이냐, 거짓이냐를 따지는데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다시 말해 논증의 과정에만 초점을 맞춘다는 것입니다.
다른 예를 들면 ‘경희대학교에 다니는 모든 학생들은 돈이 많다’ 이것을 대전제로 하고 ‘길동이는 경희대학교에 다니는 학생이다, 그러므로 길동이는 돈이 많다’를 보면 형식논리학에서는 참입니다. 왜냐하면 대전제와 소전제 간의 논증 관계가 완벽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형식논리학에서는 주장의 관계에만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참이 될 수 있지만 실용논리학에서는 대전제, 소전제 등을 별도로 모두 따져보아야 합니다.
실용논리학 면에서 보면 위의 예에서 대전제는 참이라고 보기 힘듭니다. 대전제부터 참이 아니므로 대전제로부터 도출된 결론은 참이 될 수 없습니다. 이처럼 형식논리학과 실용논리학은 엄연한 차이점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최근 비판적 사고력이라는 말이 자주 언급되고 있는데 앞서 형식논리학과 실용논리학을 살펴본 봐와 같이 논증에서 전반적인 논증의 과정도 중요하지만 개별 주장에 대한 진리 값도 따져보아야 합니다. 논증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필요한 것이 비판적 사고력입니다. 이는 논리력과 번갈아가며 쓸 수 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정리하면 비판적 사고력은 참이라고 결론을 내리는데 이르는 과정을 모든 진술문에 적용해 철저하게 진위를 따져보는 능력입니다. 실용논리학을 따지다보면 현실적인 논리 전개 방법들이 많습니다. 오늘 논제를 정의하는 방법에도 적용이 될 것입니다.
그럼 토론의 기원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debate의 어원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영어의 debattuere에서 시작이 됐는데 분석해보면 de(away)와 battuere(battle)가 합쳐진 단어입니다. 해석하면 ‘to beat’, 즉 ‘싸우다’라는 의미입니다. 이에 상응하는 우리말로는 토론(討論)이란 말과 논쟁(論爭)이란 말이 있는데 논쟁을 떠올리게 되면 ‘말로 싸우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강태완 외 2000).
토론과 논쟁의 차이점을 보자면 토론은 형식이 강조되면서 생산성이 있는데 반해 논쟁은 경쟁적 요소가 강조되면서 소모적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터 토론이라는 말을 쓰게 되었는가를 살펴봤는데 최근 발표된 논문(김기섭·허경호, 2012)에도 나와 있듯이 <세종실록>을 보면 낙어토론(樂於討論)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세종대왕이 토론을 좋아하는 군주란 의미입니다. 혹자들은 토론이란 말이 일본을 통해 들어왔다고 하는데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토론이란 말을 파자(破字)해보면 말씀 言+寸+言+侖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생각 륜(侖)자를 잘 보면 집과 책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집 안에서 책을 본다는 것은 바로 생각하고 조리를 세운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것들의 조합으로 보면 논할 論의 의미를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현재에도 논쟁보다는 토론이라는 말을 더욱 많이 쓰게 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흔히 혼동하는 부분으로 바로 토론과 토의의 차이점입니다. 흔히 토론하면 ‘결론이 나지 않는다, 상대방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라고 말하지만 이는 토론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토론은 대립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졌습니다. 프로타고라스의 말에서 토론의 기원을 찾아볼 수 있는데 그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 그 만물은 그런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이루어졌다”(박규철, 2008)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모든 사상은 대립할 수밖에 없다는 뜻(변증법: dialectic)으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정리해보면 모든 논쟁점들에는 각각 서로 대립하는 두 개의 진술이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더 약한 언변을 더 강한 것으로 만드는 과정은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박규철, 2008). 이와 같이 토론은 긍정과 부정으로 나뉘어 대립하는 구조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반면 토의는 구태여 대립적으로 갈 필요 없이 상호 협력적으로 진행되는 특징이 있습니다.
주장에도 토론은 찬반으로 이뤄지지만 토의에서는 다양한 생각을 가진 주장들이 펼쳐질 수 있습니다. 규칙에서도 토론은 공정한 시간과 발언기회를 주지만 토의는 자유롭게 진행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토론에서 상대를 설득하려는 것은 잘못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토의는 또한 서로 의견 교환을 통해 최선의 합의안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토론과 차이가 있습니다.
다시 어원으로 돌아가겠습니다. 토론은 수사학과도 연관이 깊습니다. 원리를 따져보면 토론도 수사학의 한 분야에 속합니다. 즉 수사학의 기원을 보면 토론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기원전 5세기경 이탈리아 시칠리아 시라큐스의 트라시뷸러스(Th- -rasybulus)라는 독재자가 물러나자 시민들이 나서 몰수당했던 자신들의 재산을 되찾기 위해 법정으로 모여 들었는데 여기서부터 수사학이 시작되었다고 봅니다(McCroskey, 2006). 따라서 토론(forensics)의 뿌리는 법정에서의 공방에 있으며 이 같은 공방에서 재판관이나 배심원을 설득하기 위한 말하기가 중요한 요소가 되고 이와 같은 측면에서 토론이 수사학과 관련이 된 것으로 보면 됩니다.
수사(修辭)란 말을 꾸민다는 뜻인데 rhetoric이라는 말에서 유독 말의 현란한 꾸밈에만 관심을 갖던 시대 풍조를 반영한 것입니다만 이것이 일본을 통해 수입 되면서 학문의 이름으로 자리 잡은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러나 수사학이라는 말에는 이 보다 더욱 포괄적인 의미가 담겨 있기에 근본을 잘 들여다보고 재정립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이제는 수사학보다는 논변(論辨)학으로 번역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봅니다(강태완 외, 2006). 한자를 잘 살펴보면 論(논)은 앞서 설명한 바와 같으며 辨(변)은 ‘말 잘할 辯(변)’이 아닌 ‘판단할 辨’입니다. ‘말 잘할 辯’의 경우 가운데 ‘말씀 言(언)’이 들어가 있지만 ‘판단할 辨’은 ‘칼 刀(도)’가 들어가 있습니다. 논변학에서 ‘판단할 辨’을 쓰는 이유는 논리적 판단에 이르게 하는 학문이라는 뜻이 중요하기 때문이고 이것이 수사학이라는 말보다는 rhetoric이란 말의 원뜻과도 더 가깝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덧붙여 살펴볼 부분이 소피스트(sophists)입니다. 여기서 Sophos라는 말은 wise, 즉 현자(賢者)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강태완 외, 2001). 외연적 의미를 보면 궤변(詭辯)론자로 번역되고 있는데 사실 이들이야 말로 모든 진리에 대해 회의를 품고 또 다른 논리를 펼침으로서 인간의 정교한 사고가 발달하는 데 상당한 영향을 미쳤고 이후 이것이 진정한 과학적 사고방식으로 발전되는데 기여한 사람들로 평가해야 합니다.
정리해보면 토론은 토의나 또 다른 소통양식과 달리 정해진 규칙이 있고, 긍정과 부정이 있으며, 논제에 대한 주장과 논증을 펼치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이성적 판단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토론을 다루다보면 논제의 성격에 따라 토론이 전개되는 방식이 다를 수 있는데 여기서는 토론의 방식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구체적으로는 법정에서와 같이 사실 여부를 다투는 사실토론, 두 번째로 최근 대두되는 인권문제와 같은 가치토론 그리고 세 번째로는 정책토론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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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허경호(경희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온소통 대표) | 도서 <논증과 토론(출판: 온소통)> 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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