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전쟁 폐허 이후 지난 반세기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 엄청난 경제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1960년대를 돌이켜보면 아프리카 가나보다도 후진국이었으나 지금의 모습을 보면 세계 11~13위 정도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이 같은 발전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보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난 세월 동안의 소위 일방 통행식 교육이 아직까지 이어져오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지난날의 교육방식이 경제 발전에 일정부분 이바지했다고도 볼 수 있지만 앞으로도 그런 식의 교육 방법이 계속 효과를 발휘할 수 있겠느냐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요즘에는 지식의 본질이 한 사람의 독자적 능력으로 구축하고 발전시키기는 힘들게 됐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 속에서 왜 토론이 필요한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스나이더와 쉬누어(Snider & Schnurer, 2006)는 토론 수업이 필요한 이유를 다섯 가지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먼저 정보 과잉에 따라 정보처리 및 활용 능력이 중요해졌기 때문입니다. <커뮤니케이션의 횡포>(Ignacio Ramonet, 2000/2000)라는 책에 따르면 뉴욕타임즈에 실리는 일주일 분량의 정보가 18세기 유럽의 한 사람이 평생 동안 살아가면서 얻는 정보의 양과 같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정보가 폭증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엄청난 정보를 한 사람이 섭렵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기는 구조적으로 어렵습니다. 연구실에서 혼자하는 발명가식 방법은 이제 통하지 않습니다. 결국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팀을 구성해서 연구해야만 성과를 이룰 수 있는데 바로 이 네트워크와 팀 단위의 공동 연구의 중심에 토론이 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사회변화의 빠른 속도감, 즉 여러 다른 경력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핵심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대학 졸업 후 결정한 직장이 평생직장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물가가 오르고 생활이 어렵기 때문에 한 가지 직장만으로는 힘듭니다. 이러한 이유로 이직을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능력에 따른 이직으로도 볼 수 있지만 새로운 기술에 의해 결국 자신의 직업이 대체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식으로 가게 되면 과연 평생직장이라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하는 걱정도 듭니다. 언제든지 직장에서 내몰릴 수 있고 내가 스스로 직업을 바꿀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인데 이를 위해서는 정보를 제대로 이해하고 근거를 찾아내 사회변동에 대비할 수 있는 근본적 능력을 키워야 하고 그 방법은 토론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인간의 총체적인 능력을 가늠할 수 있는 것이 의사소통 능력이며 토론은 소통의 대표적인 양식입니다.
세 번째로 글로벌 상업환경, 정보교환(다른 나라의 영향) 및 기술적 변화에 대처하기 위함입니다. 요즘 우리 삶은 결코 국내로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일본에서 발생한 쓰나미로 인한 방사능 오염 확산 문제도 우리나라를 비롯한 주변 국가에 영향을 미쳤고, 중동에서의 민주화 바람도 세계화 시대에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사건입니다. 새롭게 발전되는 기술적 발전 요인에 의해 상호의존적으로 밖에 갈 수 없다는 말입니다. 다른 나라에 대한 다양한 이슈도 제대로 알고 있어야만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 토론과 연계해서 해석하면 항상 다양한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그러한 주제에 대해 논리와 판단력을 갖춰야 한다는 말입니다. 물론 대학에서 수업의 일환으로 토론을 가르치는 이유도 국제적 이슈에 노출시켜 국제적 감각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함입니다.
네 번째로 전문가가 지배하는 현상에 대처하기 위함입니다. 요즘 사회에서 전문가라고 하지만 잘못된 정보를 제시하는 경우도 많고 진실성이 의심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꽤 지난 사건이지만 황우석 박사의 사건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신뢰성 있는 기관의 주장이라도 독립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로 바라 봐야 하고 항상 의문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토론이 중요합니다.
다섯 번째로 비논리가 지배하는 현상에 대처하기 위함입니다. 사회를 헤쳐 나가면서 따뜻한 감성도 분명 필요합니다만 이것이 주가 되어 논리가 흐려지는 경우를 경계를 해야 합니다. 즉 비판적 사고력이 항상 작동해야만 합니다. 이처럼 비논리가 창궐하는 상황에서 사이비 종교도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부분들만 보아도 토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미국의 한 설문조사(Swanson & Zeuschner, 1983)는 미국 의회의 현직 의원들의 80% 이상이 재학시절 학교 토론 팀으로 활동했음을 밝히고 있어 정치에서의 토론 교육의 중요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유명한 케네디 대통령의 경우도 대학 재학 시절 활발한 토론 훈련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래에서 인용한 문장에서 보듯이 그는 토론 교육이 민주주의에 필수적인 것이며 고등학교에서든 대학에서든 가장 가치 있는 훈련이라고 말했습니다(Winebreener, 1994, p. 13).
“I think debating in high school and college [is] a most valuable training, whether for politics, the law, business, or for service on community committees such as the PTA and the League of Women Voters. A good debater must not only study material in support of his [her] own case, but he [she] must also, of course, thoroughly analyze the expected arguments of his [her] opponents. (…) The give and take of debating, the testing of ideas, is essential to democracy. I wish we had a good deal more debating in our institutions than we do now.”
― John F. Kennedy, former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또 안티오크 대학 총장 새뮤얼 굴드(Samuel B. Gould)는 대학활동 중 자신의 능력을 키울 수 있었던 한 가지를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코 토론을 꼽겠다고 말했습니다(Winebreener, 1994, p. 16).
“If I were to choose any single activity in college which has contributed most to my career, I would certainly choose debating.”
또 맥베스(McBath)는 읽고 생각하고 쓰고 말하고 듣는 소통역량을 키우는 데는 토론이 핵심적인 교육 활동이라고 했습니다(McBath, p. 10).
“At its essence, forensics is an educational activity which provides students with the opportunity to develop a high level of proficiency in writing, thinking, reading, speaking and listening.”
이처럼 교육에서의 토론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의심할 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나라의 교육 현장에서는 토론을 제대로 교육시키고 있다고 볼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 같은 상황에서 토론 문화가 정착되지 않았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공공갈등 비용은 2010년의 경우 GDP(국민총생산량)의 27%에 이르며, 금액으로 환산하면 약 300조가 넘는 액수입니다. 또 2008년 기준 형사소송사건은 약 200만 건으로, 인구 대비로 보면 일본의 4배가 됩니다. 물론 이 같은 결과를 반드시 토론문화 미성숙에 탓으로 돌릴 수는 없지만 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갈등의 표출이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급속한 성장 탓에 제대로 된 토론교육이 정착되지 못했지만 앞으로도 교육적 패러다임을 바꿔 토론문화를 정착시키지 못하고 과거 방식에 머무른다면 선진국으로 가기는 대단히 어려울 것입니다. 요즘도 우리 사회에서는 ‘갈 때까지 가보자’는 말을 흔히 들을 수 있는데 이는 법정까지 가자는 문화를 드러내는 안타까운 우리의 현실입니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이 바로 토론능력을 키우는 일입니다. 토론능력을 발휘함으로서 갈등이 생겼을 때 이를 건설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을 흔히 냉소적으로 갈등공화국, 혹은 소송공화국이라고 부르지만 토론 교육을 통해 일반 국민들이 건설적인 토론능력을 갖춰 다양한 갈등이 발생할 때마다 합리적으로 잘 해결할 수 있다면 소통공화국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선진국으로 가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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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허경호(경희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온소통 대표) | 도서 <논증과 토론(출판: 온소통)> 중 발췌
* 본 내용은 논증과 토론 도서에서 발췌한 것으로 무단 복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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